영화 <<대부(The Godfather, 1972,1974)>> –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청년 시절의 비토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넘어와 터전을 꾸리던 청년 시절 비토 콜레오네와 친구들 앞에 돈 파누치가 나타난다. 파누치는 보호비 명목의 상납금을 요구하고, 그의 악명에 두려워하던 친구들 앞에서 걱정하지 말라는 듯 비토는 말한다. “그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거야.” 비토는 친구들에게 각각 협상에 필요한 돈(하지만 요구한 금액에 한참 못 미치는)을 받아들고, 파누치를 만난다. 비토는 말한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원하는 상납금을 당장은 줄 수 없다, 가진 것이 이것뿐이다, 다음 달부터는 원하는 만큼 상납할 테니 이번 달은 넘어가줄 수 없겠느냐고. 자신 앞에서 설설 기는 사람들만 만나왔던 파누치는 비토의 패기에 호쾌하게 웃으며 재미있는 놈이라는 듯 제안을 수락한다. 그러나 그것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은 아니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축제가 한창인 마을 어귀에서 파누치를 죽여버리는 순간에서야 제안의 의미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돈’ 콜레오네

노년의 비토는 돈 콜레오네로 불리며 뉴욕에서 거대한 패밀리를 일군다. 그의 앞에 배우 자니 폰테인이 찾아와 울먹인다. 하고 싶었던 배역이 있으나 캐스팅이 안 된다며. 비토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의 목덜미를 붙잡고 호통을 친다. “사내답게 행동해!” 그리곤 변호사에게 일을 시키며 말한다. “그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것이다.”라고. 폰테인을 캐스팅할 수 없겠느냐고 점잖게 제안한다. 영화 제작자 월츠는 단칼에 거절한다. 조용히 물러서는 변호사. 그러나 이번에도 그것은 제안이 아니었다. 월츠의 애마가 머리가 잘려 피가 낭자한 채로 침대이불에 놓인 것에서 그 의미가 드러날 뿐.

혼자 남은 마이클

영화 <<대부>> 1, 2편에서 젊은 시절 비토(알 파치노)와 노년기의 비토(말론 브란도)의 에피소드는 짧지만 강렬하다. 가족과 신뢰, 의무, 충성으로 뭉친 패밀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었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 같아 보이기도 한다.

피로하기 그지없던 지난한 술자리 대화 이후에 문득 대부가 떠올랐다. 한참이나 전에 본 영화인데도 얼기설기 에피소드들이 생각나는 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의 만남에서 상대는 제안을 가장한 요구를 몇 시간 동안 했었다. 허황된 꿈같은 말들. 돌아서서 다른 말하면 그만인 말들. 입장 차이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본인 입장에서만 말하는 단편적인 언어들. 사업하는 사람들이야 모두 매일 돈을 입에 담고 돈을 말하기 마련이지만, 그게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사람마저 돈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수준으로 나아가곤 한다. 그런 걸리적거림. 목덜미에 낀 생선가시 같은 이물감. 불편함. 아, 또 상대를, 나를 이용해먹으려고 하는구나 하는, 숱한 몸짓과 언행이 지겨웠다.

자신의 부모 형제를 모두 죽인 마피아가 있는 이탈리아를 떠나 뉴욕에 정착한 그가 훗날 거대한 패밀리를 이룰 수 있었던 데는 ‘돈’만을 쫓지 않고 ‘사람’의 믿음을 살 줄 아는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대화의 피로 때문이었겠지. 그 시뻘건 속이 훤히 들여다 보여서. 사실 믿음과 연대를 만든 비토는 돈과 의심만 낳은 마이클과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게 영화 <<대부>> 시리즈의 핵심이고 시대를 지나서도 통용되는 이야기인 이유다.

왠지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거야”라고 하는 비토는 주변 사람에게 믿음을 준다. 그때 그의 말은 덜 중요하다. 오랜 세월 그가 주변 사람에게 신뢰를 쌓은 결과가 각각의 장면에서 드러나는 것일 뿐. 그러니 좋은 관계를 만들고 훌륭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사람 마음을 얻는 것’ 이외의 왕도는 없다. 돈도 결국 사람이 벌어다 주는 것이니까.

냉소적이지 않을 수 있는 힘

헤이~ 상상력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퍼~ 『타짜(2006)』

영화 『타짜』의 아귀는 동물적 본능대로 살아간다. 유대관계나 정과 믿음보다 생존과 이익의 나침반대로만 움직이는 존재. 그는 직선적이지만 날카롭다. 목표물만을 노리고 매섭게 달려드는 맹수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하이에나보다 더 무서운 건 응축된 힘 때문이다.

너무 많은 생각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을 망친다. ‘적당히’만큼 어렵고도 중요한 인생 지침서가 있을까. 알레르기 환자만큼 생각의 양극단을 오가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떨 때는 먼지 한 톨에도, 김치에 들어간 젓갈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때로는 아귀만큼 본능대로 움직인다. 그럴 때마다 쉽게 나빠지는 건 덤이다.

괴로울수록 적당히를 떠올린다. 너무 예민하지도, 너무 무감각하지도 않고, 너무 굳어 있거나 너무 물렁한 상태로 있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한 발 더 나아가 모가 나서 주변을 헤치지는 않지만 자기만의 개성이 뚜렷하기를 바라고, 둥글둥글하되 자기중심은 확고해서 흔들리지 않기를 원하게 된다. 양극단은 언제나 괴롭다.

그러나 가끔 고민 많은 이들과 대화할 때가 있다. 이상하게도 고민과 걱정이 많은 타입일수록 고집은 센데 귀는 닫혀 있고, 상상력은 지나치게 풍부한 만큼 행동하는 일은 없다. 패를 쥐었으면 고민만 하기보다 승부를 걸어야 함에도 늘 ‘이 패를 내는 게 좋을까’, ‘저 패를 내는 게 나을까’ 하고 생각만 하는 꼴이다.

그들은 잡다한 감상에 늘 젖어 있다. 회한이 가득한 과거를 끝없이 들춰내고, 오지 않은 미래를 늘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데 여념 없다. 그들이 떠올리는 과거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자신이 과거에 대해 가지는 인식과 생각일 뿐이라는 걸 모른다. 그저 그 생각을 떠들 뿐이다. 떠들어서 잊으려 한다. 마치 술 마시고 잊으려 하는 이들처럼.

그리고 그들의 패는 늘 자기 손에만 쥐어져 있고 늘 감춰져 있다. 항상 지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있다고 여기지만, 그들은 곧 알게 된다. 언제나 패배하는 선택을 해왔다는 사실을.

어차피 뻔하다. 이기거나 지는 것밖에 없다. 지는 마음으로 살면 영원히 패배자로 살게 되고, 회피하며 살아도 달라질 것은 없다. 가진 패가 있으면 질러야 한다. 뭘 가졌는지를 모르면 살펴보기부터 해야 한다. 이기든 지든 그 다음은 그 다음의 패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왜 도박판에 끌려나와 있는지,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고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떠들고 있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도박판 이전의 삶을 들출 필요도, 이곳을 나가면 어떻게 하겠다는 포부도 무의미하다. 판에 앉은 이상 게임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자기 생각에 심취한 이들은 자기 생각만큼 애지중지하는 것도 없다. 고민을 오래 할수록 고민에 대한 생각도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신념이 된다. 그러므로 그들이 떠들 때 옆에 있으면 그들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만 하게 될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고민은 당장 행동을 바꿔야 할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내 안에 머무르는 친구나 자식 같은 존재라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고민과 걱정을 없애려 들면 득달같이 달려와 말한다.

“그 정도 고민은 아니다!”

 

 

취향 없는 사람과 냉소적인 사람은 매력이 없다. 매사에 부정적인 면만 들춰내는 사람의 곁에는 늘 사람이 없다. 내면화한 패배주의와 냉소는 전염병과 같다. 사람은 예민한 감각의 동물이기에 그런 이들을 쉽게 알아차리고 거리를 둔다. 그럴수록 그들은 더 고립되고 더 냉소적이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상대도 원할 확률이 높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것에 상대도 매력을 느낀다. 사람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투덜거릴 때가 아니라 웃어보일 때다.

 

찰리 채플린 『황금광 시대(gold rush, 1925)』 연설은 못하지만 춤을 보여주겠다며 포크에 빵을 꽂아 춤을 보여주는 모습. 그의 표정과 눈빛이 한참이나 머릿속에 남아서 맴돌았다.

 

체력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요즘에 짬을 내어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하나 둘 보기 시작했다. 황금광시대(1925), 시티라이트(1931)나 모던 타임즈(1936), 위대한 독재자(1940). 양차 대전과 대공황, 나치 출현이 있던 시대 속에서도 누군가는 사랑과 희망, 웃음을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자기 생각에만 빠져 지내곤 한다. 그리고 그 둘은 완벽하게 다른 세상에서 산다. 어쩌면 평생 알콜중독 아버지와 병, 트라우마로 곪아가는 속을 어쩌지 못해서 자기연민에 빠진 글이 빼곡했던 나로서도 색다른 발견이었다. 더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시티라이트 1931. 자기 눈을 뜨게 해주었던 사람이 백만장자가 아니라 허름한 옷을 입고 우스꽝스러운 일을 당한 남자라는 것을 보았을 때, 채플린은 특유의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낸다. 다시 서울에 올라온 후로 더욱 그렇게 지낸다. 몰입해서 지내다 잠깐 빠져나올 때면 온몸이 보내오는 고통 신호를 더 생생하게 느낀다.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오직 내 고통과 즐거움만이 있다. 그 외의 다른 건 없다. 그것만큼 단편적인 세상살이도 없다.

그런데 채플린의 영화 속 인물들은 다르다. 바지 뒷구멍이 구멍 난 채로 돌아다녀도, 기계의 그늘 속에서 기계가 된 것처럼 지내도, 한 푼 돈을 벌기 위해 복싱 경기장에 올라도, 독재자를 따르는 군인들에게 늘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그는 그 속에서 웃음을 찾고 휴머니티를 잃지 않는다. (물론 그런 영화라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숱한 반복적인 행동과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만든 코미디는 그의 전신이 담긴 풀샷에 적극적으로 드러나고, 클로즈업되어 감정과 표현이 보다 강하게 나타나는 씬에서는 묘한 파토스가 그대로 느껴진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하는 게 그 모습들을 두고 하는 말일까 싶은 것이 곳곳에 배여 있다. 그리고 그것은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를 풍자하면서 바보같은 모습으로 일관하다가 처절하게 내뱉는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 연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위대한 독재자(1940) 영화 내내 블랙유머와 풍자로 웃음을 주는 그이지만, 마지막 연설에서만큼은 결의에 찬 연설을 이어나간다.

 

결국 냉소적이지 않을 수 있는 힘은 ‘적당히’ 할 수 있는 균형감각이 가장 중요한 듯하다. 밸런스를 잡으려면 최소한의 정신력이 필요하고, 정신력은 체력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므로 모든 것의 시초는 건강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런 면에서 근래의 무기력감을 조금이라도 털어내고 웃고 싶은 마음이 크다.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나부터 다잡고 일어서자 싶은 나날이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 죄의식에 관한 보고서

죄와 벌 - 나무위키

죄와벌 초판본 표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1866)』

 

자기 신념과 죄의식

1865년.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총살형을 앞두고 풀려난 이후에 『죄와 벌』을 썼다. 이 소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뒷골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로, 가난한 수재 대학생인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사상을 스스로 실현할 수 있는지를 두고 시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죄와 벌』의 무대는 1860년대 제정 러시아로 이듬해인 1861년에 농노해방령이 시행된다. 이로써 많은 노동력이 도시로 유입되지만 아직 도시는 그것을 소화할 일은 많지 않은 상태여서 가난과 혼란이 도시 전반으로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마르멜라도프 가족이 이 시기의 피해자를 대변하고 있다. 마르멜라도프의 딸 소냐는 가난한 가족을 위해 창부 생활을 하고, 마르멜라도프는 술집에서 자신의 가난을 한탄하다 마차에 짓밟혀 죽고 만다. 라스콜리니코프의 가족 또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의 누이 동생이 그런 가족을 위해 돈 많은 사람에게 시집을 가서 가난을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19세기 중반의 지식인 계급을 대변하는 이 무대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이런 불합리한 사회에 극렬하게 반대하고 반기를 드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이동생 두냐가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하려는 결혼을 극구 반대하다 못해 두냐와 어머니에게 증오심까지 품는다. 이는 곧 자신이 비범한 존재라면 이토록 불합리한 세상을 뒤엎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이지 않을까.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평범한 인물임을 안다. 이는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시도한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죽이기 전에 이미 인식하고 있지만, 자신의 사상을 끝까지 검증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로 인해 끝모를 죄의식에 빠진다. 『죄와 벌』은 죄의식에 관한 보고서다.

 

재미있는 점은 예심판사 포르피리가 라스콜리니코프의 사상이 담긴 논문을 발견한 뒤에 그를 범인으로 의심하지만, 라스콜리니코프의 방어적인 논리를 뛰어넘지 못하고, 라스콜리니코프의 친구 라주미힌 또한 논리로는 라스콜리니코프를 이겨내지는 못하는데 반해, 창녀 생활을 하는 소냐만은 다르다는 부분일 것이다. 포르피리의 날카로운 심문에 극도로 긴장하고 죄의식과 불안에 사로잡히기는 하지만 끝내 죄를 자백하지는 않지만, 바로 그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는 소냐, 이 거룩하면서도 그리스도에게 확고한 믿음을 가진 소냐에게만은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는 라스콜리니코프다.

 

옷을 단단히 동여맨 사람의 옷을 벗기는 건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다라는 옛이야기처럼 이해와 공감, 인정으로 다가서는 소냐에게 라스콜리니코프는 감화된다. 극도로 불안정하고 소외되고 그 누구에게서도 구원받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삶을 사는 소녀가 그리스도에게 헌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다 라스콜리니코프에게 논리로 맞서고 잘못을 고백하라고 다그치기 보다 사랑을 다해 대하는데, 이런 그 사람만이 지닌 배경과 특질, 행동과 사랑 앞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극도로 불안에 떠는 그 마음을 오히려 열어보였던 것은 아닐까. 소설의 말미로 갈수록 라스콜리니코프는 신앙을 가지고 회개할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끝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거나 반성하는 모습은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곧 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할 테고, 이야기의 힘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을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강렬한 개성은 인간의 여러 본성을 가감없이 들춰내고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려 하는 데 있다.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들과 그것들이 엇갈리는 모습 속에서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물음을 계속하게 되는 이야기들. 오래 두고두고 보아야 할 문학이 아닐까 싶다.

 


 

줄거리

라스콜리니코프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나폴레옹처럼 법을 넘어서는 인간, 개혁을 이끌고 법을 제정하는 사람으로써 비범한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소시민인 평범한 인간이 그것이다. 그는 자신이 비범한 인간인지 아닌지를 시험하기 위해 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죽여서 그 돈으로 사회의 선한 곳에 쓰려는 생각을 갖는다. 그는 노파를 도끼로 내려찍어 죽이지만 불미스럽게도 그 장면을 노파의 누이 동생 리자베타가 보게 되고, 얼떨결에 리자베타까지 죽여버리고 만다. 이후 라스콜리니코프는 극심한 죄의식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열병으로 쓰러진다.

 

한편 예심판사 프로피리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사상을 기록한 논문을 발견하고 이에 흥미를 갖는다. 포르피리는 직감적으로 라스콜리니코프를 범인으로 의심한다. 둘은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이는 라스콜리니코프로 하여금 더 큰 죄책감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주정뱅이 마르멜라도프가 마차에 치여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를 돕고, 수중에 있던 돈 전부를 마르멜라도포의 딸 소냐에게 준다. 이를 계기로 가난한 가족을 위해 창부 생활을 자처하는 소냐와 연을 맺게 된다.

 

날로 깊어지는 죄의식에 시달리던 라스콜리니코프는 결국 여동생 두냐와 어머니, 그리고 그의 절친 라주미힌에게 이별을 고하고 그들의 곁을 떠난다. 그리곤 소냐를 만나 자신이 노파와 리자베타를 죽인 범인임을 실토한다. 라스콜리니코프에게는 완고한 신앙심을 가진 소냐가 위로와 구원의 대상이었다. 그의 고백으로 소냐는 충격을 받지만, 이내 그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함께 하겠노라고 맹세한다.

 

그 과정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스비드리가일로프를 만난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하인을 학대하여 죽게 만들고, 14살 소녀를 능욕하는 인간이다. 둘은 극명한 대비를 이루지만 한편으론 묘한 동질성을 서로에게 느끼는데, 이는 스비드리가일로프 또한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자신의 사상을 스스로 뛰어넘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순전히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과 정욕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허용된다는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에게 자신의 범죄 행각을 고백한 것을 알고 마찬가지로 두냐에게 고백했지만, 완강한 거부로 자신의 사랑 고백을 거절당하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큰 충격을 준다. 경찰에 자수를 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에 형기를 살기 위해 떠난다.

 


 

짧은 인용

 

스비드리가일로프 “나는 실은 무엇에도 이렇다 할 흥미를 못 느끼는 인간이오. 정말이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下』 김희숙 옮김, 14쪽, 을유문화사, 2012

 

‘유령은, 말하자면 다른 세계의 단편이고 부분이고 시작이다. 물론 건강한 사람에겐 그것이 보일리 없다. 건강한 사람은 지상적인 사람이고, 따라서 충실함과 질서를 위해 오직 이 세상의 삶만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병에 걸려서 유기체 속의 정상적인 지상적 질서가 약간이라도 파괴되면, 이내 다른 세계의 가능성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병이 심할수록 다른 세계와의 접촉도 많아져서, 인간이 완전히 죽게 되면 곧바로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것이다.’
(…)
“우리는 언제나 영원이라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관념으로, 무언가 거창한 것, 어마어마하게 큰 것으로 떠올리고 있소. 하지만 어째서 꼭 거창한 것이어야 하는 거요? 그런 것 대신에 그곳엔 연기에 시커멓게 그을은 시골목욕탕 같은 작은 방이 하나 있고, 구석구석에 거미가 집을 치고 있다. 이것이 영원의 전부다 라고 문득 상상해보시오. 실은 이런 것이 이따금 눈에 아른거릴 때가 있소이다.”

24쪽

행복은 기대에서 현실을 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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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계절 속에 굳이 보는 건 종말이다. 새순이 올라오는 계절에 나의 눈은 주변에 흐트러져 있는 죽은 이파리들에 머물고, 환한 아이들의 미소보다 굳게 걸어잠근 뒷골목의 녹슨 철문이 아른거린다. 별종이라면 별종이고 기인이라면 기인이다. 세상만사 ‘사랑’이 사람을 살게 하고, ‘사랑’이 전부라고 외쳤던 시기도 있었다. 그 무엇이 틀린 말이겠는가. 사람을 더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사랑이지만, 내 안의 어떤 감정들은 낙엽되어 떨어진 길섶의 이파리보다 힘없이 나풀거리며 사라져가고만 있으니 나로서는 별로 더 할 말이 없다. 누군가는 사랑의 힘으로, 생명이 움트는 기운으로, 새로운 도전의 열망으로, 자신에게 기댄 사랑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살아가겠지만, 나에게는 그 무엇도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은 때로 넘어와 버렸으니, 이게 바로 샛길로 들듯이 나이를 먹은 방증이란 말인가. 나이를 먹고 갈수록 몸이 고되더라도 마음 속 빛의 기운은 잃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어째서인지 모든 것에 더 퉁명스럽고 더 무관심해져만 간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의 발로는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다는 뜻이고, 무관심하다는 의미는 의미조차 의미가 없어지는 시절을 맞이하고 있다는 의미다. 어떤 이는 ‘기대에서 현실을 뺀 것’이 행복이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별다른 기대가 없는데 왜 행복을 못 찾겠지?

너 자신을 크게 생각해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어때? 우리가 살면서 뭔가에 이유를 대잖아. 이유를 100가지도 댈 수가 있어. 그게 루저 마인드야. 자꾸 핑계대고, 자꾸 이유대고… 이런 약한 모습 안 보고 싶다는 거야. 이해했어? 너 자신을 크게 생각해. 할 수 있다니까, 충분히? 타협하지마 타협. 자꾸 익슈큐즈를 하지 말라고. 익슈큐즈가 아니고 솔루션을 해. 솔루션을. 네 자체 내에서. ‘이렇게 했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아쉽다’ ‘이렇게 해서 다음에는 제대로 해봐야겠다’ 이런 거 있잖아. 익스큐즈가 아니라 솔루션으로 바꾸라고. 생각하는 마인드 자체를. 알겠지? 그래야 큰 선수 돼. 여기서만 이렇게 있을 거야? 그래, 더 큰 데 가야지. 그럼 더 큰 생각을 해야 한다니까. 편하게 못 가요. 누구든 편하게 못 가. 여기 있는 사람들 편하게 왔는 줄 알아? 아니야. 다 어렵게 했어. 너도 어려웠겠지만 더 어렵게 간 사람들 많아. 잘 할 수 있다니까. 잘해봐.”

– 신임감독 김연경 5회 김연경이 인쿠시에게.

의무로 점철된 세계에서 벗어나 모든 걸 기회와 흥미로 여기는 세계로 나아가자. 너 자신을 크게 생각하라. 자신감을 가져라. 네 안에서 솔루션을 만들어내라. 그런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이 곧 너의 삶이 되고, 보고 듣고 하는 말이 곧 네가 될 것이니 결국 다른 결과를 만들려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영화 <<브루탈리스트(Brutalist, 2025)>> – 왜 건축인 거죠?

The Brutalist | movie | 2024 | Official Trailer

브루탈리스트(Brutalist, 브래디 코베, 2024)

여하튼 이 부다페스트 출신의 유대인 건축가가 아메리칸이 살아 숨쉬던 미국에 당도하여 펼쳐지는 고난과 성취와 실패와 고통의 이야기 속에는 삶의 곳곳에 배어 있는 눅진함이 있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온 건축가 라슬로와 굶주려 골다공증이 와서 휠체어를 타며 밤마다 끙끙 앓는 그의 아내, 위선적인 자본가를 보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허상을 다룬 거라는 말에 일리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그저 시종일관 우울한 표정의 한 명의 예술가이자 건축가인 라슬로의 인생을 곁에서 함께 걷듯 보았다. 때론 현실에 절망하고, 때론 자기의 예술관을 관철시키려 애쓰다가 언젠가는 자기 예술 작품인 건축물에 정신을 놔버린 듯 열중하는, 그러나 자기 작품에 집착할수록 조금도 행복과는 멀어져가는 그의 어두운 영혼을 보는 듯했다.

 

“삼촌은 이제 회당에도 안 가고 도일스타운의 공사 현장을 넋이 나간듯 쏘다녀. 공사는 이제 많이 진척됐는데 착공날보다 조금도 행복해 보이질 않아. 혹시 그는 자신만의 제단을 쌓고 있는 걸까?”

 

마지막에 조카가 했던 말. “당신이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목적지이지 과정이 아니라”는 말은 그 과정을 아는 관객 입장에서는 정말 이상하고 역설적인 말처럼 들린다. 1980년. 제1회 건축 비엔날레에서 백발의 노인이 된 라슬로는 자기 작품들을 소개하고, 그의 삶을 평하는 모습을 그 특유의 음울한 얼굴로 바라만 본다. 그의 삶에서 있었던 진실은 오직 본인 가슴에만 묻어두려는 듯.

 

하필 요즘처럼 개성 잃은 생존의 노예가 되었을 때 보아서인지 여운이 있었다. 수없이 죽어갔던 주변의 지인들은 도대체 기억되지 못하고 사라져만 갔다. 아무리 핍박받고,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나치가 휩쓸고 간 유럽에 여전히 남아 있는 아내를 그리워하고, 위선적인 자본가에 멸시를 당하면서도 자기만의 건축 세계를 끝내 포기하지 않으니 단 하나는 남았다.

 

그의 건축물. 그의 정신.

 

“왜 건축인 거죠?”

“세상 어느 것도 그 자체로는 설명이 안 돼요. 정육면체를 설명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걸 만드는 거죠. 전쟁은 참혹했지만 그럼에도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제 프로젝트의 상당수가 살아남았어요. 아직도 그곳에 있다고요. 그 도시에. 유럽의 끔찍한 기억들이 더는 수치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날이 오면 그 기억들은 오히려 정치적인 자극제가 되어 민족의 역사 속에 늘 반복되는 또 다른 변혁의 불씨가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분노와 두려움의 서사가 사람들 사이에 나돌 거고 그런 천박한 말들이 강물처럼 흘러넘칠 겁니다. 하지만 제 건물들은 다뉴브 강물의 침식조차 견딜 수 있게 설계됐어요.”

“아주 시적인 답변이군요.”

 

내게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싶었다.

 

‎The Brutalist (2024) directed by Brady Corbet • Reviews, film + cast • Letterboxd

첫사랑이자 짝사랑

 

그녀가 나를 보았다.

장난꾸러기 아이같은 하얀 미소, 그렇게 나는 사랑에 빠졌다.

그날부터 시작이었다. 내 눈엔 40명이 북적대는 교실에서도, 운동장에서도 그 아이만 보였고, 교과서를 펼쳐도 그 아이 얼굴만 동동 떠다녔다. 그땐 어찌나 자신감이 부족했던지 친화력이 좋은 그녀는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도 않아 수많은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만 머릿속에 맴돌았고 수없이 용기를 내보기도 하였지만 그녀 근처에만 가면 딱 용기낸 그 숫자만큼 버벅거리기 일쑤였다. 스쳐지나고 나면 ‘이런 멍청이! 왜 남들 다하는 그걸 못해?’라고 자책도 하고 스스로 불만스럽기도 했지만 즐거웠다. 머릿속에 그녀만 떠올리면 웃음이 났다. 그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바라만 봐도 좋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훗날 가서는 ‘괜히 잘못 고백했다가 영영 웃는 얼굴을 못볼 수 있다’는 영문 모를 두려움에 스스로 고백 못함을 합리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남녀공학의 고1 신입생들을 위한 배려였는지 아직 서먹한 우리들을 위해서 도덕선생님은 롤링페이퍼를 하자 하셨다. ‘나는 이때다!’ 싶었고 어떡하든 이 기회에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지만, 그때 롤링페이퍼에 난 특출나 보이고 싶어 내 이름이 아닌 필명을 쓰고 말았다. 그때의 내 어린 생각으론 그녀가 날 궁금해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롤링페이퍼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무슨 말을 쓸까였다. 어떻게 나를 알리고 어필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이 시작되었다. 종이는 계속 돌아가고 다른 아이들의 롤링페이퍼가 내 앞에 수북이 쌓여가는 동안 나는 어떤 말을 쓸까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만성 표현력 부족 증후군을 앓던 나는 아이들과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반에서 이미 나는 말수 없고 조용한, 있는 듯 없는 듯 알 수 없는, 그런 아이로 알려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게 내가 아닌데, 장난끼 많고 능청스럽고 곧잘 우스꽝러운 모습도 있는데, 아버지에게 기가 눌린 채 커서인지 내 본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내 안엔  조용하고 낯가리는 나만이 남아 있었다.

‘OO아 안녕, 너랑 같은 반이 되어 반갑다. 앞으로 자주 인사하고 친하게 지내자. 그리고 내 말 많다. 친해지면 말 많이 한다. 그러니 다른 오해 말고 앞으로 잘 지내보재이~’

 

그래, 내 수준이 딱 그 정도였다. 십 여분을 고민하다가 나온 문장이 저랬다. 망했다 이게 아닌데 싶어 수정하려 해도 이미 종이엔 펜물이 스며든 후였고, 그것을 직직 펜으로 긋거나 화이트로 지워 더럽힌다는 건 그 아이의 반응은 둘 째치고 나부터 용납이 안 되었기에 그저 한숨만 쉰 채 내 옆의 짝꿍으로 종이를 넘기는 수 밖에 없었다. 시무룩해진 나는 수북히 쌓인 롤링페이퍼에 일관되게 ‘OO아 반갑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를 써가던 중이었다. 주변은 도대체 이 필명은 누구냐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쓰나미가 덮치듯 민망스러움이 몰려왔다. 부끄러움을 감춘 채 그 필명이 나라고 말했다. 그걸 옆에서 듣던 친구 하나가 하마같은 입으로 크게 웃어대며 놀려대기 시작했다. 나는 부끄러웠다. 그녀에게만 필명을 쓸 걸 지나친 정직함인지 멍청함인지 모두에게 필명을 쓰는 바람에 네가 무슨 연예인이냐라는 둥, 작가냐는 둥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상심하던 차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귀여운 미소를 머금은 채 하늘 높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거 너?”

“어? 어~”

“하하 너 웃긴다~ 너 말 없잖아”

“아이다~ 내 말 많다!!”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만큼은 나는 행복했다. 그깟 부끄러움 쯤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나를 보며 웃지 않은가!

그러나 호언장담했던 그때와 달리 나는 여자라는 생물체 앞에만 서면 벙어리가 되기 일쑤였고, 딱 그만큼 그녀와 친해질 기회는 사라져 갔다. 나는 그저 먼 발치에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평소에 혼자있는 걸 좋아했지만, 그때만큼은 친화력 없는 나를 원망했다. 그러던 사이 그녀는 다른 아이와 사귀었다. 내가 봐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은 슬펐다. 나는 이쯤에서 그녀를 포기하고 싶었지만 내 가슴이라는 놈은 학창시절 내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지금도 늘 생각한다. 나는 왜 그리도 자신이 없었을까. 용기 내어 고백하지 못했을까 하는.

나만의 짝사랑은 지금도 그렇게 내 기억 저 편에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아픈 가시 같은 사랑

1

짙은 어둠 속에 있었다. 생은 그늘졌고 가족은 병들었다. 어느 이민자의 삶처럼 가족은 세계를 겉돌았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을 몰랐고,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몰랐다. 삶에 가족이 침투할 공간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가족은 모두 제각기 살았고 제각기 버텼다.

 

생은 지리멸렬했다. 생존이라는 증명서는 쉽게 교부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중학교를 입학하던 무렵 엄마를 잃었다. 고독 속에서 아버지는 살았다. 거칠고 모난 시장 바닥에서 아버지는 지지 않고 물건을 더 많이 떼오기 위해 언성을 높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자신의 안위를 챙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자기 의견을 쉽사리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십수 년을 시장바닥에서 일하다가 운명처럼 엄마를 만났고 결혼해서 나와 동생을 낳았다.

아버지는 도매시장의 양념동에서 마늘과 각종 양념들을 팔거나 납품하며 살았다. 아버지의 주머니에는 늘 마늘 여러 알이 들어 있었는데, 퇴근 후에는 늘 식탁 위에 마늘 몇 개를 올려놓고 방에 들어가 술을 마시곤 했다. 그런 아버지를 엄마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 성에 차지 않거나 자기 뜻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화내고 윽박지르는 그를 엄마와 나는 증오했다. 아버지는 홀로 술을 마셨다. 형제와 연락하는 일도 적었고, 외부에서 친구나 지인을 만나는 일도 없었다. 아버지는 늘 외로워 보였고 또 괴로워 보였다. 취기 오른 아버지는 방이 떠나가라 웃으며 티브이를 보다가 잠들곤 했는데, 새벽 세 시가 되면 귀신 같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그것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출근도 어두운 길을 홀로 걸었고 퇴근도 어둑한 뒷골목을 걸어 들어왔다. 아버지의 삶은 고독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가족이 없었고 사랑을 몰랐다.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몰랐다. 늘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살아 있는 것은 슬픔이었다. 문드러진 몸으로 한 발자국도 스스로 내딛지 못한 채 골방에 갇혀서 나는 살았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도, 비 내리는 음습한 그늘 아래에서도 똑같았다. 나의 몸은 새집증후군과 중증 아토피로 너덜거렸고, 온몸이 소나무 껍질처럼 짓이겨져서 진물이 처마 밑을 타고 흐르는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열아홉 살 무렵 가을의 일이었다.

하루하루가 눈물이었다. 다리를 펴면 다리 살이 찢어졌고, 팔을 펴면 팔 안쪽 피부가 진피층을 드러내며 갈라졌다. 지이익거리는 소리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나는 고통을 참느라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아무도 나의 고통을 알지 못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신이 내린 벌 같았다. 할 수 있는 일은 돈을 벌어서 병원에 가고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는 일이 전부였다. 엄마는 울었고 아버지는 화를 냈다. 빌어먹을 세상, 도대체 기댈 곳이 없다며 우리 가족은 전국을 누볐다. 참숯가마 찜질방에서 온몸을 지지며 목초액으로 샤워를 하거나 죽염을 미숫가루처럼 퍼먹었다. 대구 한의원에서 배독요법을 한다며 하루종일 목욕탕에서 땀을 빼기도 했고, 대학병원에서 각종 임상실험과 진드기 치료, 인터페론 주사, 면역치료를 하고 한약을 물처럼 마시는 등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다 했다. 그러나 차도는 없었다.

 

생은 지랄맞음이었다. 엄마는 여자로 살지 못했다. 사춘기 내내 남자 형제 넷과 동거했다. 다섯 형제 중에 엄마만 여자였으므로, 희생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전쟁터 같은 시장 바닥은 늘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흘러갔고, 그 속에서 엄마의 요구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라서 청소하고, 여자라서 상차림을 도왔다.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았고 어떤 것도 얘기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외간 남자를 만나는 일도 할머니는 거부했다. 자유가 결박된 삶. 엄마는 여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었으나 그 어떤 자유도 가지지 못한 채 나이를 먹었다.

그런 엄마와 아버지가 만나서 결혼했다. 우연이었고 한편으로는 필연이었다. 가족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를 낳았고, 동생을 낳았다.

엄마는 아버지 때문에 고통받았다. 헤픈 씀씀이, 술을 물처럼 마시는 일, 가족에게는 막 대하면서 남에게는 간과 쓸개마저 퍼주려는 행동, 전날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력, 항구와 시장에서 다진 거칠고 모진 말투, 급하고 드센 성격과 권위주의가 짙게 밴 사고구조 등을 엄마는 힘들어했다. 엄마의 한풀이는 끝이 없었다. 살풀이하듯 엄마는 악다구니하며 온갖 아픈 기억을 쏟아냈는데, 그럴 때면 정말 굿하는 사람 같았다. 말의 흐름은 끝이 없었고, 어두움은 짙었다. 나는 짓이겨진 피부로 엄마의 한풀이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생은 핏물로 엮은 감옥 같았다. 그것은 너무 끈끈해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동생은 홀로 자랐다. 홀로 컸고 홀로 고민했다. 그에게는 살아가는 일 자체가 짐이었다. 그늘 짙은 가정 아래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공부했고 홀로 학교에 들어갔으며 홀로 학교에 낼 돈을 벌었다. 직장인 밴드에 들어가 공연을 하거나 기타를 가르치는 일을 하며 꿈을 키우기도 했다. 흔들리는 가족 속에서 동생만은 저 스스로 몸을 가누며 버텼다. 버텨서 살았고, 꿈을 꾸었고,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가족이었다. 나와 동생은 나와 동생은 엄마와 아버지의 자식으로 살면서 불안과 고독을 밥처럼 씹었다. 수없이 맞으며 악바리 근성을 키웠고, 끊임없는 다툼 속에서 살며 분쟁을 조정하는 법을 비웠다. 제대로 살아가려면 아버지처럼 악바리로 생에 매달려야 했고, 엄마처럼 끈질기게 생이 휘몰아치는 강바람에 맞서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약했다. 홀로 버티기도 벅찼다. 우리 가족은 무너지는 배 속에 있는 사람들처럼 무기력했다. 도대체 인생에 맞서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 있단 말인가. 매일 밤 나는 그렇게 하늘에 물었다.

 

 

2

어느 날, 아버지가 쓰러졌다. 응급실에 실려 갔다. 부리나케 달려갔더니 아버지는 멀건 표정으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빠진 호랑이를 보는 것 같았다. 괜찮냐는 말에 괜찮지 그럼이라고 대답하는 무심함, 나는 아버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숨을 헐떡거렸고, 가슴 통증을 느꼈는데,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아버지는 스스로 119를 불러 병원에 갔다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엄마가 말했다. 도대체 정신이 없다며, 제 몸 하나 지키지 못하는 아버지를 엄마는 나무랐다. 아버지는 13일간 병원에서 지내며 치료를 받았다. 병원이 감옥 같다며 지겨워했지만, 별수가 없었다. 의사가 “죽고 싶소”라고 하는 통에 꿀 먹은 병아리처럼 8인실의 병상에서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병실은 좁고 시끄러웠다. 아버지는 매일 창밖을 넋 놓고 보거나 병실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했고, 때로는 제 몸을 벗어나 세상을 유랑하듯 떠도는 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말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구나…하고.”

시간이 흘러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제각각 다른 삶을 살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가기 위해 애썼다. 어느 계절에 한 가족이 오랜만에 모여 밥을 먹을 때였다.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아파보니까 네 마음을 알겠더라.” 뜻밖의 고백이었다. 엄마가 화를 냈다. 그것 좀 아팠다고 뭘 안다고 그러냐고, 역정을 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말에서 진심을 읽었다. 어쨌든 죽을 것만 같았다는 느낌은 본인에게만은 진실이었고, 나는 그것과 내 고통을 비교하는 일을 두고 옳고 그름을 말할 필요는 없는 거였다. 아버지가 뒤이어 말했다. 너를 알겠다고, 이해하겠다고, 너의 마음이 어땠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야 알겠다고 내게 고백했다. 나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옛 내 모습을 떠올렸다. 망막박리증, 백내장, 비강 낭종, C형 간염, 유리체절제술, 새집증후군, 통풍, 천식 등을 앓았던 순간들. 하루하루가 눈물이고 고통이었던 시간이 떠올랐다. 권위주의적이며 보수적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떠맡아서 우리를 키우던 엄마, 홀로 고독하게 성장해갔던 동생과 늘 아픔 속에서 방황하던 내가 새벽의 그늘 어딘가에 있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종종 내게 건강을 물었다. 아토피가 신문 기사에 나오면 오려서 내게 보여주기도 했고, 가끔 전화해서 어느 한의원이 유명하다고 하니 꼭 가보라는 말도 건넸다. 나는 아버지의 호의가 어색했지만 내심 고맙기도 했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에는 그런 질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그 찬란한 순간에 겪어야 했던 참혹한 눈물의 시간을….” 그 물음은 좀처럼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인제 와서 달라질 것이 없다고 여겼다. 그건 이제는 봉합할 수 없는 찢어진 흉터에 불과했다. 아무리 꿰매려 해도 살이 되붙지 않는 말라붙은 살덩이들, 그것이 우리 가족의 상처였다.

 

 

3

어느 날이었다.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옛이야기가 불쑥 나와서 오랜 시간 동안 묵혀 있던 얘기들을 하나둘씩 꺼내놓았다. 수없이 이사하고, 장사하다가 말아먹고, 집에 불이 나서 난리통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도 다친 데 없이 너희가 장성해서 취업 준비를 한다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짓던 아버지. 그 옆에서 엄마는 인상만 찌푸리며 밥을 먹고 있었고, 나와 동생은 아버지 기분을 맞춰주며 허허로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그래도 야, 내가 살면서 너희들 언제 한 번 때린 적이 있냐, 나는 없어! 손찌검은 안 했어!” 순간 엄마와 동생이 폭발했다.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기억 안 나요?!”라며 외려 엄마와 동생이 윽박질렀다. 나도 무언가 마음에 동해서 거들었다. “진짜 기억 안 나요? 쳐다보면 쳐다본다고 때리고, 개도 그렇게 안 먹는다고 때리고, 말 안 듣는다고 때리고, 오락실 갔다고 나무 빗자루가 부러지도록 때리고, 발가벗겨서 때리고, 얼마나 맞았는데요?!” 나의 말에 엄마와 동생도 거들었다. 아버지는 눈이 동그래졌고, 여러 차례 두리번거렸다. 도대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말똥해졌고, 나와 동생, 엄마를 여러 번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내가 그랬나? 진짜 그랬나?”

아버지는 여러 차례 되물었다. 정말 놀란 듯했다. 엄마와 동생은 끊임없이 옛이야기를 쏟아냈다. 속에 담긴 설움을 담아서 한풀이하듯이 앓던 속을 내뱉었다. 아버지는 조용히 우리의 말을 들었다. 자신만의 아픔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던 순간, 나는 아버지의 진심을 엿보았고, 아버지는 자신이 잊어버린 과오를 자각했다. 그리곤 살며시 내 손을 잡았다. 한참 동안 손등을 쓰다듬고 두드렸다. 아버지의 눈이 여린 사슴으로 변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 눈을 나도 바라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아버지에게서 미안한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네가 가슴에 큰 응어리를 안고 살았구나. 아버지가 몰랐다. 네가 마음고생이 많았겠네. 아이고 자슥…. 아무튼 내가 잘할게. 앞으로 내가 더 잘할게.”

나는 믿기지 않아서 가족들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가족들도 놀란 눈치였다. 가족들의 얼굴 위로 지난 서러운 기억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이 모든 순간이 꿈처럼 아늑했고 따스했다. 이런 순간이 더 있을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현실 속에 있는지 꿈속에 있는지 분간하지 못했다. 가슴에 들어찬 큰 돌덩이 하나가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4

한때 나는 우리 가족이 병든 가족이라 생각했다.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서로를 증오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고 여겼다. 가난한 환경, 병든 육체는 버틸 만했다. 그러나 병든 가족은 버티기 어려웠다. 각자의 아픔 속에서 모두 각자의 마음만 우선하며 살았고, 너의 말보다 내 말이 옳다는 것으로 모든 대화가 점철되었다. 우리는 만나면 싸우며 으르렁거렸다. 그런 아픔이 서로 맞잡은 두 손, 서로를 이해하려는 눈빛으로 나아져 가는 것이었다. 이해와 사랑, 그것만 있으면 되었는데, 그것을 아는 게 너무 오래 걸렸다. 나는 아버지가 잡은 손으로 가슴이 뜨거워져서 너무 아팠다. 너무 아파서 너무 행복했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와 동생은 취직해서 서울로 올라왔고, 엄마와 아버지는 고향에 남아 일을 계속했다. 서로 떨어져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흘러간 시간 속에 남은 마음의 낡은 조각들을 하나씩 걷어냈다. 아버지의 사과를 받아서가 아니었다. 엄마의 희생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의 아픔은 우리의 성장에서 꼭 필요한 자양분 같은 거였음을 어느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아버지의 성장 과정을 들으며 평생의 한으로 남은 그들 마음의 그늘을 보았고, 그들이 받은 사랑만큼 자식을 사랑하려 너무도 애썼다는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최선을 다해서 사랑했기에 때로는 상처를 주었다고, 온전히 사랑하려면 서로를 온 힘 다해 꽉 껴안을 필요는 없는 거라고, 단지 같은 방향을 보며 서로의 손을 맞잡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며 함께 걸어가기만 해도 충분한 거라고, 그래, 서로의 손에 전달되는 따스하고 깊은 사랑의 체온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 무엇도 우리를 병들게 할 수는 없다는 걸 나는 배웠다.

“독감 주사 맞았나? 이제 진짜 맞아야 된데이. 너는 몸이 약해서 무조건 맞고, 서울서 고생 많이 하는 거 알지만 너무 힘들고 그러면 집에 전화도 하고 으잉? 아직까지는 그래도 아버지 엄마가 다 네들 뒤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알긋재??”

“아버지도 감기 조심하세요. 당뇨도 그렇고요. 요즘 날씨가 왔다 갔다 해서 한 번 감기 걸리면 오래가니까요. 몸 조심하시구요.”

근래의 우리 대화다. 지난날로써는 상상할 수 없던 모습이다. 시간이 지나 서로를 이해한 만큼 우리는 이해와 사랑이 싹튼 모습이다.

돌이켜보면 나와 가족은 서로에게 아픈 가시 같은 사랑이었다. 나는 나로서도 아팠지만, 서로가 있어서 아프기도 했다. 가까이 다가서고 싶지만 늘 아프게 했던 고독한 우리 가족이 이제 조금씩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사랑에 늦고 빠름은 없다. 다만 영원하냐 찰나에 끝나느냐만 중요할 뿐이다.

 

영화 <<듀얼(Duel, 1971)>> – 공포는 이미지다

“이건 내 인생에 없어도 될 20분일 뿐이고 날 휘감고 있던 끈들은 이제 끊어질 거야.” – 데이비드 맨

 

공포는 이미지다. 공포는 상상이며 은유이고 하나의 상징이다. 공포는 구천을 떠도는 악귀처럼 구체적인 실체는 없으나 늘 인간을 위협하고 옥죄는 사형집행인으로 인간 곁에 서 있다. 공포가 위협적인 이유는 이유가 없거나 모르기 때문이며 언제 자신을 덮칠지 모르는 데다 정체마저 희미하고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마치 어두운 골목 어귀에 숨어서 그곳을 지나가는 행인의 목뒤를 노리는 살인마처럼 언제 어디서나 있을 것만 같은 불안을 야기하는 것이 공포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위를 달리는 한 사내가 있다. 그는 성사될지가 불분명한 사업을 위해 먼 길을 횡단하는 중이다. 1차선 도로는 앞뒤로만 길게 뻗어져 있고 그 길의 어디쯤에는 가연성 물질을 싣고 달리는 트럭이 있다. 사내는 저녁에는 일을 마치기 위해 속력을 내서 트럭을 추월하고, 별일 아닌 것처럼 보였던 작은 사건(추월) 하나로 공포는 하나의 실체로 뒤바뀌어 사내를 엄습하기 시작한다.

트럭이 사내를 앞지른다. 사내는 답답함에 여러 차례 경적을 울리고 다시 트럭을 앞지른다. 몇 번의 추월이 있고 난 뒤부터 사내와 트럭은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더는 무시할 수 없는 거추장스럽고 불쾌하고 찝찝한 적의가 꽃피는 순간이다. 이후로 트럭은 시종일관 사내를 뒤쫓거나 앞지르고 또 나아갈 길을 막아서는 등의 방해를 한다. 거대한 트럭이, 운전자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그 희미하지만 자신에게만은 진하게 다가온 공포의 이미지가 온몸을 휘감는다. 사내와 트럭의 대결은 이제 시작이다. 그러나 마지막 시점에 나타난 사내의 오묘한 표정에서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공포와 막 싸움을 끝낸 자의 허탈하면서도 음울하고 통쾌하면서도 허무한 표정을 본다. 도로에는 적막이 흐르고 그는 모든 것을 잃은 채 서 있다. 왜 대결해야 했는지, 혈투해서 얻은 결과는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벌어졌고 그것이 끝났을 뿐이다.

인간은 공포의 생산자다. 외부의 침입이나 외부와의 충돌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하나의 상징체로서 공포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공포는 일방통행할 수밖에 없는 도로에서, 이제는 되돌아갈 수도 없고 그것을 앞질러 나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멈추어 설 수도 없는 사면초가의 입장에서 스스로 상상한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않는 자는 누구인가? 바로 인간 자신이다. 악은 거대한 하나의 이미지로 작동하고 인간은 스스로 만든 악에 의해 스스로 단두대에 올라가서 자기 목을 내려치도록 한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사막 위를 달리는 거대한 트럭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그러나 스스로 지었다고 생각하지 못할) 죄로 인해 파생된 지워지지 않는 악인 것이다.

 

영화 듀얼(Duel, 1971). 스티븐 스필버그 장편 데뷔작.

★ : 4.5/5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Asteroid City, 2023)>> – 인생의 타이밍

인생의 타이밍은 기다려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기다린다고 해서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 스스로 걸어가 따먹거나 그것을 선택의 영역에서 완벽하게 배제시키는 것이 필요한 듯하다. 인생의 고됨이 말 몇마디로 해결될 문제였다면 말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전되어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가 이미 매뉴얼처럼 혹은 몸의 유전자처럼 인이 박혀 세대를 넘나들며 떠돌아 다니고 있을 것이기에. 그러므로 모든 문제는 스스로 자를 박차고 나아가 해결하는 것, 그리고 타이밍은 그러한 시도 속에서 어느새 발견 되는 일이다.

애스터로이드 시티 (Asteroid City, 2023)